Oct 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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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김 씨 여자와 김 씨 남자가 어떻게 만나 한 이불을 덮게 되었는지 그 경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여차저차 연을 맺고 첫 아이를 밴 젊은 부부는 혹독한 강원도의 겨울이 시작될 무렵 딸아이의 탄생을 맞이하는데, 그것이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나서 찾아온 두 번째 겨울이었다는 점, 거기서 이제 막 꾸려져 수상한 시절로 내던져진 평범한 일가족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을 뿐이다. 그림은 단출하고 담담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떤 비장함 또한 배어있다. 모든 삶의 시작이 그렇듯이. 

일가족은 둘에서 셋이 되고 잠시 넷도 되었다가 금세 셋으로 줄고 이윽고 다시 둘이 된다. 하지만 이 때의 둘은 시작할 때의 둘과는 다른 조합이다.

“늬 아버지는 밥상머리 앞에서도 그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단다.”

부부의 첫 딸에게 김 씨 여자의 이 회고는 평생에 걸쳐 아버지 김 씨 남자를 요약하는 단 한 문장이자 모든 문장이었다. 바로 그가 가장 먼저 그림에서 사라진다. 실종, 말 그대로 사라진다. 그 뒤로 김 씨 남자의 구체적인 생사는 영영 알 수 없다. 몸과 마음과 가족과 땅을 찢으며 시작된 전쟁이 그를 손수 휩쓸어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구십일 세.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없지는 않다.

“글쎄 참 딱하지 뭐야. 그래, 아빠라는 사람이 있었지, 하는 어렴풋한 실감이 남아 있는 것도 같은데, 하도 어른들이며 사촌 오빠들한테 얘기를 들은 탓에 꼭 내가 직접 기억하는 양 하나 싶기도 하고 뭐 그렇단 말이야.”

이는 부부의 장녀가 네살박이 때 여읜 아버지에 대해 훗날 자기 딸에게 되읊는 한탄이다. 이럴 때면 역시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딸을 “너는 그래도 다 커서 아빠 돌아가셨어, 야. 사진도 있고…” 하며 흘기는 그녀이다. 격화하는 전쟁에 다급히 고향을 떠나야 했던 채 서른도 안 된 김 씨 여자는 김 씨 남자의 사진 한 장 피난 보따리에 챙겨 넣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김 씨 남자가 사라지고 남은 셋 중 아직 언급되지 않은 이는 누구인가? 큰 아이의 갓난 동생, 부부의 둘째 딸이다. 김 씨 남자를 뒤이어 이 아기가 떠난다. 가까스로 유복자 신세는 면했으나 태어난 지 얼마지 않아 아비마저 잃고 그 난리를 버텨내기엔 턱없이 연약한 젖먹이였다. 밀려 밀려 남녘을 향하던 길 위에서 아기는 마음껏 울어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김 씨 여자와 김 씨 남자로 시작되어 네 식구를 이루었던 일가족 중, 이렇게 김 씨 여자와 첫째 아이만 살아남는다.

부부는 돌림자를 가운데 두고 두 딸의 이름을 지으며 큰 아이는 맑으라 하고 작은 아이는 난초같으라 했다. 생존했다면 예순을 훌쩍 넘겼을 아기 “란”은 제 언니의 인생에, 길게 휘어진 잎사귀의 가늘지만 단호한 그림자를 내내 고요히 드리운다. 자매는 누구든 조선의 백성으로도, 일제의 신민으로도, 새로 건설될 나라의 국민도 아닌 그저 자기 자신만으로 태어나야했던 시대를 나눠 진 운명이었다. 다만 동생이 언니를 길렀다. 아기의 존재가 흩어진 흙과 공기와 물로 그 언니가 살았다. 아기가 언니의 삶 그 근원에 늘 있었다.

아기의 언니는 지난한 우여곡절 속에서도 쑥쑥 아름답게 자란다. 그리고는 우연히도 아버지와 같은 해에 태어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남자는 이야기꾼이었다. 그는 책을 읽기는 물론 쓰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밥상머리 앞에서도 글쎄 책을 놓지 못했다던 아버지는 얼굴도 몰랐지만, 밥상머리 앞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냥 신이 나 갖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그녀 곁에 자리를 잡아주었다. 그녀와 함께 우주를 다시 빚었다.

이렇게 일어난 바톤 터치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녀와 한 세대나 차이났던 남자는 일흔 두 살 되던 해, 둘 사이에 두어 여남은 살 쯤 먹은 딸과 그녀를 뒤로 한 채 세상을 떠난다. 다시 모녀 단 둘만 남는다. 이 상황은 낯이 익다. 그런데 그로부터 이태가 지났을까 거뭇거뭇 말라가던 그녀에게 아버지에 관한 소식이 불현듯 찾아들었다. 다섯 살도 되기 전에 아버지를 잃은 그녀가 쉰을 넘기려는 시점이었다.

그는 생사가 불투명하기는 하나 여러모로 짐작컨대 사망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됐다. 초로의 딸은 절망했다. 하지만 무언가가 더 있었다. 아버지가 1930년대 모 농업고교의 독서회 비밀결사에 가담, 항일운동 행적이 확인되는 인물이라는 사실이었다. 결과는 독립유공자 서훈. 당사자가 망실 상태라 유일한 직계자손인 그녀가 보훈대상이 되었다. 글읽기를 멈추지 못했다던 김 씨 남자는 항일도 독서회 모임을 통해서 했던 것이다. 

“네 아빠가 가더니 우리 아버지를 보내 줬나 봐.”

한창 십대로 매사 냉정하기 짝이 없던 딸은 이런 식의 해석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감격해서 울먹이는 엄마가 가여워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딸은 엄마의 친가와 외할아버지의 모교와 담당 부처 사람들이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한 해어진 흑백사진에서, 새끼 손톱보다도 작은 얼굴들 가운데에 있는 외할아버지를 순식간에 짚어냈다. 수 년 만에 화색이 도는 엄마가 저를 낳기도 전 찍었다는 처녀적 사진에서 본 얼굴이 그 오래된 사진 속에 고스란했기 때문이다. ”너, 아버지 보고 싶거든 거울을 들여다 보람.” 당숙부들이 엄마에게 어릴 적부터 거듭 들려 주었다던 이 말씀이 사무쳐 오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김 씨 남자는 자기 삶을 적어도 스물 몇 해가 되기까지는 기록에 남겼다. 딸의 기억에 얼굴도 새기지 못하고 떠나갔지만 홀어미로 나이 먹어가는 그녀의 생계에 보탬을 주기까지 이르렀다. 국가적인 보관 자료가 될 공문서의 한 귀퉁이에 화려하지 않으나마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기 “란”은? 이 아기는 누가 어떻게 기억하면 좋을까. 

언니의 딸이 갓난아기인 이모를 보살피려 한다. 기려서 기르려고 한다. 생존한 언니와 아기의 돌림자는 “상”이다. 相. 서로 “상”. 언니의 딸이기에 이 돌림자를 물려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한 글자를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조카가 이모를 낳는다.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스러진 여린 존재와 그녀가 살지 못한 생을 애도하며 이야기를 엮는다. 돌림자 바깥에서도 그녀들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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